진시황에 대해서 다들 들어 보셨겠죠?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운 황제입니다.

 

진나라는 본래 주나라의 제후국 중 하나였지만 시황제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중국의 영문 명칭인 China는 진(Chin) 나라에서 나온 것입니다.

 

진왕은 최초로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시작할 시 자를 써서 시황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진왕은 자신의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적합한 칭호를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태황의 황과 삼황오제의 황제중 제를 합쳐 황제라 칭하기로 했습니다.

황제가 스스로를 부를 대 짐이라 부르게 된 것도 이때입니다.

 

진나라를 세운 시황제는 일벌레인 것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매일 30kg의 문서 분량을 정해놓고 그 일을 다 하지 못하면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진시황의 업적 중 대단한 것은 중국 문자를 통일하고 각종 물건들의 규격화를 실행했다는 것입니다.

그중 특히 수레바퀴 크기를 규격화했습니다. 크기뿐 아니라 수레바퀴의 양 폭을 통일했습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굉장한 것입니다.

 

그 당시 지금 우리의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돌로 깐 도로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홈을 판 다음 바퀴를 넣고 달리는 형식이었습니다. 어떤 지방에서 수레가 고장 나면 규격이 통일돼 있어서 새로운 바퀴를 그 폭대로 맞춰서 다시 끼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바퀴크기가 달라서 새로운 바퀴를 갈아 끼워 달릴 수 없었습니다.

 

일본 NHK방송에서 실크로드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첫 회에 병마용갱을 다루었었습니다.

 

병마용갱은 진시황 무덤이 아니라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조사해보니 병마용갱은 진시황릉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모인 구덩이였습니다.

 

병마용갱을 줄여서 진용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흙으로 빚어 만든 진나라 인형이라는 뜻입니다. 주로 병사와 말이 나왔기 때문에 병마용, 엄청나게 큰 구덩이에서 나와서 병마용갱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진시황릉 전체를 능원이라고 부르는데 그 능원의 한 부분입니다.

 

진시황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흙으로 빚어 지하에 묻었던 지하군단인 셈입니다.

 

병마용갱은 1974년에 발굴되어 1979년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병마용갱은 1 호갱, 2 호갱, 3 호갱 등 구덩이 세 개가 발굴되었습니다. 

 

병사들만 8천 구가 나왔고, 무기등 각종 기물은 10만 건이 나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병사들이 전부 실물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키는 170~190cm였고 얼굴이 똑같은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는 실제 군인들을 보고 스케치해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발굴이 끊이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박물관 규모도 커지고 전시실도 늘어나는 등 주변의 모습들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병마용갱으로 중국이 벌어들인 입장료는 1년 평균 2500억이고 하루에 7~8천 명 정도가 다녀 간다고 합니다. 오래전 자료라 지금은 더 많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이 관광수입으로 인해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관중평원에서 잡곡을 지어먹고살던 농민들이 이젠 병마용갱 선물가게 관광수입으로 먹고살게 된 것입니다. 

 

물론 병마용갱의 문화적 가치는 관광수입과 관련된 수치가 아닙니다. 

 

천하를 통일했던 진나라가 불과 20년 만에 멸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진시황은 어떤 사람이기에 생전에 이와 같은 병마용갱을 만들 수 있었을까?

 

진시황를은 어떤 모습일까? 등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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